FT, 유로존 디플레이션 불안 확산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디플레이션 불안이 짙어짐에 따라 경기 부양을 위해 은행의 가계·기업 대출을 증권으로 만들어 사들이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유로존이 포함된 유럽연합(EU) 조약은 ECB가 회원국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은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은행을 통한 채권 매입으로 돈을 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시간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고려하는 이 방안은 전통적인 양적 완화 정책과는 크게 다른 데다, 유로존의 은행 대출 부실에 대한 잠재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이나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들은 국채나 회사채를 직접 사들여 경기를 부양하는 전통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특히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미 이달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고 양적 완화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FT는 드라기 총재rk 지난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ECB가 살 수 있는 자산 중 하나는 은행 대출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은행이 민간 부문에 내준 대출을 묶어 증권화한 후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ECB가 이 증권을 사들이는 것이다.
로이터도 이날 드라기 총재가 은행 대출을 투명하게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만들어 ECB가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으며, 이 역시 EU 규정 변경이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현재 ECB는 은행들을 대상으로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을 시행하고 있다. ECB가 은행에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면 은행이 이 돈으로 민간에 다시 돈을 빌려줘 통화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이다.
하지만 LTRO 시행 후에도 ECB의 기대만큼 물가는 오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해 12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전년 대비)로, ECB가 정한 목표치 최고 2%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11월(0.9%)보다도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다.
드라기 총재는 누차 유로존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작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ECB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은 ECB에 디플레이션 예방책을 쓰라고 계속 주문하는 상황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최근 수차례 유로존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라가르드 총재는 25일 WEF에서도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목표치보다 훨씬 낮은 상태며, 유로존은 디플레이션이라는 잠재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OECD는 지난해 11월 ECB에 LTRO보다 더 공격적인 통화 정책인 양적 완화를 도입해 디플레이션 위험에서 벗어나라고 권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물가 침체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 내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 회복이 방해받고 있으며, 지금 유럽에 필요한 건 인플레이션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들 국가가 재정 위기에서 하루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줄여야 하는데, 물가 하락으로 소득까지 줄면서 가계와 기업, 국가의 부채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