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미 침체 피하는 대신 내년까지 지속적 ‘슬로우세션’

3일(현지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를 피하는 대신 내년까지 지속적인 경기 둔화에 맞닥뜨릴 것으로 전망했다.

잔디 수석은 이날 발표한 투자 메모에서 이러한 종류의 장기적인 경기둔화를 ‘슬로우 세션’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고한 바 있는 잔디 수석은 올해 미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1%를 밑도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 경제성장률은 올해 3분기에 0.8%로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 경제가 경기침체를 피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공식적인 경기침체 여부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판단하고,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GDP가 2개 분기 연속 감소하면 경기침체 상태라고 본다.

잔디 수석은 미 경제가 올해 경기침체를 피하는 대신 저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했다. 2024년 3분기까지 미 경제 성장률은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잔디 수석은 연방준비제도(Fed)가 수십 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미 GDP 성장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강력한 노동 시장과 소비자 요인은 경제의 전면적인 위축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집중하면서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연준은 경기침체를 촉발하지 않고 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양호하다는 점도 경기침체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몇 달 전에는 미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인다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적어도 이전의 경기침체 전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 이전에는 가계와 기업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기적 자산 시장, 과소 출자한 금융 시스템 등으로 경제가 몸살을 앓지만, 현재 미 경제에는 이러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은행들 역시 침체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본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소비자들의 저축이 충분히 쌓여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미 가계가 대출 상환과 소비력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대부분의 가계는 부채 관리를 잘 해왔고, 원리금 상환에 쓰이는 가계의 소득 비중은 기록적으로 낮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 전역의 집값 하단도 지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주택 매수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집값이 계속해서 떨어지고는 있지만, 미 전역의 주택 공급 부족은 주택 가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분석은 월가 대다수 이코노미스트의 올해 경제 전망에 배치된다. 월가에서는 미 경제가 올해 상반기 중 일시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한 뒤 하반기 연준의 금리인하에 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65%로 바라봤다.

물론 잔디 수석과 같이 올해 미 경제가 경기침체를 피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일부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먼삭스의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잔디와 유사한 전망을 내놨다.

다만, 잔디 수석의 전망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고통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올 것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는 미 소비자와 투자자가 고통에 약간 더 쉽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고 언급했다.

잔디 수석은 메모 말미에 미 경제에 가장 큰 위험은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고조되거나 중국에서 새로운 코로나19 변이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시나리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소비자와 기업이 앞으로 험난한 시기에 대비하면서 저축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면서 미국의 경기침체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것도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