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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파운드(GBP)

영국 개요

• 정식 명칭대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주요 도시런던(London)
• 인구약 6,443만 명 (July 2016 예상치/ Central Intelligence Agency)
• 공용어영어(공용어), 웨일즈어, 스코티쉬 게일릭, 아일리시 게일릭
• 건국일10세기 이후 통일국가 유지
• 정부 형태입헌군주제, 내각책임제, 양원제
• 국가 원수엘리자베스 2세 (1952.02 ~) 여왕
• 정부 수반테리사 메이 (2016.07 ~) 제 76대 총리
• GDP2조 6,499억 달러, 세계 5위 (2016 IMF 기준)
• 화폐 단위파운드(£)
• 중앙은행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 중앙은행 총재마크 카니 (2013.07 ~) 제 120대 총재

영국의 역사

고대 영국(브리튼섬)에는 유럽 전 지역에서 목축업을 하던 켈트족이 양의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브리튼 섬을 발견, 당시 원주민 이었던 이베리아인을 몰아내고 정착합니다. 당시 켈트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이 같은 영국 브리튼섬의 켈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로마의 지배였습니다. 로마제국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BC 55년과 54년 두 차례에 걸친 원정을 시작으로 1세기 이후 본격적인 공격을 감행해 현재 잉글랜드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을 약 4세기 동안 지배하였습니다. 4세기 후반에는 북방계 켈트족(스코트족)을 비롯해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으로 구성된 게르만족의 침입이 시작되며 로마의 지배가 위협을 받기 시작하였고, 결국 5세기에 이르러서는 로마의 지배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이후 로마화된 원주민인 켈트족 계통의 브리튼족과 이미 오래전 브리튼 섬으로 이주하여 정착 중이었던 게르만족인 앵글로-색슨족이 충돌하며 7세기 경까지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앵글로-색슨족의 승리로 끝나면서 여러 개의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생겨났고, 섬에 잔존한 브리튼족은 웨일즈, 콘월 지방으로 이주, 대륙으로 건너간 브리튼족은 브르타뉴 공국 등을 건설하며 이른 바 7왕국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8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온 북방의 데인족(바이킹)의 침략은 9세기 중엽부터 규모를 더해 11세기에는 덴마크의 왕자 였던 데인족 크누트왕이 잉글랜드를 지배하게 되고, 웨섹스의 왕이었던 에셀레드 2세는 프랑스 노르망디로 망명하게 됩니다.

크누트왕이 죽은 뒤 노르망디로 망명했던 웨섹스 왕가의 참회왕 에드워드가 돌아와 앵글로-색슨 계통의 왕가를 부활 시켰는데, 1066년 에드워드가 죽은 뒤 그의 의동생 해럴드 2세가 왕위에 오르자 당시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엄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영국으로 쳐들어갑니다. 윌리엄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군을 격파(노르만정복)하고 정복왕 윌리엄 1세가 되어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국가인 노르만 왕조를 열게 됩니다.

14~15세기에는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1339~1453)’과 랭카스터가와 요크가의 왕위쟁탈전으로 비롯된 ‘장미전쟁(1455~1485)’을 겪으면서 봉건세력이 쇠퇴하고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영국은 17세기 명예 혁명에 이를 때까지 왕권과 신권의 다툼이 극에 달하며 피로 얼룩진 역사를 만들어냈으며, 이후 최종적으로 신권이 승리하면서 왕권을 크게 제약하는 의회제정법인 ‘권리 장전(Bill of Rights)’을 발표하며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의 시초를 만들어 냅니다.

18세기 초에는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으며, 산업혁명, 그리고 막강한 해군력과 식민지를 통해 얻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종횡무진 설치고 다니며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영국의 대표적인 식민지 중 하나였으나, 18세기 후반 독립전쟁에 승리하며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영국은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백인 식민지 자치령화를 실현시키는 한편,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아편전쟁 등을 계기로 중국시장에도 진출하며 제국주의를 발전시킵니다.

영국 파운드(Pound sterling)

• 정식 명칭Pound sterling (ISO 4217 코드 : GBP(Great British Pound의 약자))
• 중앙은행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 BOE)
• 공식 사용국영국
• 기호£
• 보조 단위페니 (복수형 펜스) - p로 표기
• 동전1p, 2p, 5p, 10p, 20p, 50p, £1, £2
• 지폐£5, £10, £20, £50
‘파운드(£)’는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화폐단위로서 영국과 영국 왕실령(British Crown dependencies)의 공식 화폐이며, 영국 내에서는 ‘퀴드(quid)라고도 불립니다. 한때는 전 세계를 군림하던 기축통화였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위상이 추락하였고, 지금은 달러, 유로, 엔화에 이어 4위로 밀려났습니다. 보조통화로는 ‘페니(복수형 펜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100펜스는 1파운드에 해당합니다.

동일한 화폐제도 안에 속하기는 하지만, 웨일즈를 제외한 3개 지역이 각기 고유의 파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잉글랜드 파운드), 스코틀랜드(스코티쉬 파운드), 북아일랜드(아이리쉬 파운드)는 서로 다른 파운드 도안을 사용하고 있으며, 잉글랜드 파운드와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상호 통용이 되지만(잉글랜드 상점에서 스코티쉬 파운드를 안받는 경우가 많긴 함), 아이리쉬 파운드는 잉글랜드 파운드나 스코틀랜드 파운드와 통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1:1로 환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1921년 영국령으로부터 독립한 남아일랜드는 2002년부터 유로화 사용)

영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꽤나 복잡한 화폐단위를 사용했습니다. 1파운드는 20실링, 다시 1실링은 12펜스 즉, 12진법과 20진법이 혼용되어 사용됐기 때문에 개혁 초기에 혼란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971년 2월 15일 영국은 본격적으로 10진법을 채택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1파운드 당 4.03달러에서 2.40달러까지 평가절하되었던 파운드화는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1파운드 당 2.42달러에서 1972년 2.65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국 경제가 거대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파운드는 곧 위기를 맞게 되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 차츰 가속화된 인플레이션은 석유파동 이후 27%까지 치솟으며 파운드화의 가치를 1.65달러까지 끌어내렸고, 영국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됩니다.

IMF 관리체제 하에서 파운드화는 빠르게 가치를 회복하며 2.40달러 선을 회복하였지만, 영국의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1980년 이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파운드화가 1.03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렛 대처의 경제 재건을 위한 구조개혁을 바탕으로 1980년 대 후반에는 연 4% 이상의 성장을 보였고, 파운드화 역시 가치를 회복해 1.70달러 선으로 올라섭니다.

1990년대 들어서 영국의 파운드화는 독일의 통일과 환 투기세력의 공격 등으로 다시 한번 변동 폭이 확대되며 1.40파운드 대로 급락합니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마르크화를 천문학적으로 풀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파생된 인플레이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 초 고금리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당시 유럽 환율 매커니즘(ERM)에 가입했던 영국은 협약에 따라 독일 마르크화와 ±6% 수준의 범위에서만 변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 평가된 마르크화와 연동해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경기는 더욱 침체되고 파운드화의 가치는 폭락의 조짐을 보이게 됩니다.

특히, 이 같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금융당국은 환율 방어에 자신감을 표출하며 해당 영향을 간과하였는데, 1992년 9월 15일, 영국의 외환시장은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국제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으며 하룻밤 만에 환율 방어 실패를 선언하고 1992년 9월 16일(검은 수요일)로 ERM을 탈퇴하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영국은 유럽연합(EU)의 가입국임에도 현재까지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7년에 이르러서 파운드화는 영국의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 미국 달러의 약세 등으로 26년 만에 최고치인 2.12달러까지 올라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파운드화는 2008년 말 리먼 브라더스 쇼크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2009년 1월 1.38달러까지 급락하게 됩니다. 이후 파운드화는 2009년 후반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2015년 2월 현재에는 1.50달러 선 전 후의 변동 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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